[도서]청소 끝에 철학

2018.07.30 19:01 빽짱구 이야기/도서

청소 끝에 철학

철학 도서라고 하면 왠지 무겁게만 느껴진다. 

책을 읽는 내내 “작가가 의도하는 바가 뭐지? “, “무엇을 말하고 싶은걸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청소 = 만족감

청소에는 정도가 없다. 그날 기분에 따라 냉장고 안을 다 끄집어 내서 정리할 수도 있고, 물걸레로 바닥만 닦을 수도 있다.

정리만 했을 뿐인데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고, 집안 전체를 다 쓸고 닦아도 만족감을 못 느낄수도 있다.

다르게 비유하자면 돈이 많아도 만족을 못할 수도 있고, 없지만 그걸로 만족 할수도 있는것이다.



청소 끝에서 자아를 찾아낸다. 결국 본인이 생각 하는거에 따라 근심과 걱정이 되는냐, 여유가 되느냐의 차이인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걱정거리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한 것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일, 22%는 걱정할 필요가 없는 사소한 사건에 대한 것이며, 4%만이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일에 대한 걱정이다.

다시말해 96%가 쓸데 없는 걱정이라는 것이다.


작가의 시선과 다르게 생각하자면, 만족을 못하는 사람은 그만큼 만족을 할려고 노력을 할것이며, 그 목표까지 도달 했을때는 또 만족을 못할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본인은 만족을 못하더라고, 남들이 봤을때는 그만큼 노력을 했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상급자가 되어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작은거에 만족을 했다면, 마음은 여유로울수 있지만, 그만큼 얻는건 덜할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이책에서 말하는 청소는 자아 발전이 아닌, 자아를 찾는쪽이 가깝고, 마음적 여유로움을 갖고자 하는 메시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독자가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자아를 찾다보면 발전을 할수도 있으니, 어떤게 맞다고 판단 짓기는 힘들다.

어떠한 도서를 읽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 사람마다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어서 철학 이라는게 무겁게만 느껴진다.


어느날 TV에서 실내 인테리어 관련된 프로를 보게 되었다.

답답했던 공간이 하나하나 바뀌어 가는 모습이 마냥 신기하게만 느껴지고,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도 대리 만족을 하게 된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지만, 누군가가 이런말을 했다. “1년동안 사용을 안 하는 물건은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괜히 납두면 짐만 됩니다.”


그렇다 책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데, 어떨때는 저런물건을 버림으로해서 답답함이 여유로움으로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무거운 삶에 찌들고 답답할 때 그 감정을 두려워 하기 보다는, 가끔 한번씩 청소를 해주면, 한층 더 여유로운 삶을 살지는 않을까?

이 책에서의 청소는 이런 부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본인 마음 속의 청소!’




나 자신을 돌아보고, 무거웠던 마음 속 쓰레기가 있다면 과감히 버리시고 새로운 에너지로 여유를 찾길 희망해 봅니다.



  1.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철학에 대한 글이 있어서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제가 또 댓글을 달았다면 죄송합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저자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아래는 책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에 더 많은 내용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이 글이 불편하시다면 지우거나 무시하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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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https://blog.naver.com/ecenter2018